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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현의 바다, 문명의 서사시]‘무소유의 삶’ 깃든 낚시 기술, 유럽 이방인들도 감탄
조회수 145 보도일 2019. 12. 20 원문보기(UR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201637005&code=960100

[주강현의 바다, 문명의 서사시]‘무소유의 삶’ 깃든 낚시 기술, 유럽 이방인들도 감탄

(13) 북미 원주민의 ‘영혼이 있는 물고기잡이’

유럽에서 넘어온 이방인들로부터 멸종을 강요당한 북미 원주민은 이제 선물가게의 기념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왼쪽 사진). 동토의 땅의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은 눈과 얼음을 수십 종류로 구분해 불렀다. 그러나 이 소중한 민속지식은 효율만을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점점 사라졌다 (오른쪽 사진 위). 북미 원주민의 전통적인 고기잡이법 어살(돌살). 어느 집단도 강과 바다의 산물을 독점적으로 차지할 수 없다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오른쪽 사진 아래).

유럽에서 넘어온 이방인들로부터 멸종을 강요당한 북미 원주민은 이제 선물가게의 기념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왼쪽 사진).

동토의 땅의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은 눈과 얼음을 수십 종류로 구분해 불렀다. 그러나 이 소중한 민속지식은 효율만을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점점 사라졌다 (오른쪽 사진 위).

북미 원주민의 전통적인 고기잡이법 어살(돌살). 어느 집단도 강과 바다의 산물을 독점적으로 차지할 수 없다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오른쪽 사진 아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모의 한때, 저마다 신년의 힘찬 도약과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방식의 무한 발전, 무한 성장이 과연 가능하고 온당한 것이기만 할까.

이럴 때 멸종을 강요당한 북미 원주민의 삶, 역사 너머로 영영 사라진 또 하나의 역사를 반추하는 것도 중요한 일 같다.

서부개척사 중심의 역사 서술을 전복시킨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한국어본이 1980년대 한국 독자들의 시각 교정에 일익을 담당했다면, 이후에는 원주민의 이야기들이 고귀한 담론으로 포장되어 일종의 붐이 일었다. 한국 교포나 유학생들이 밴쿠버를 비롯한 북서태평양 연안으로 물밀 듯 들어갔으나 정작 그 땅의 선주민에 대한 이해는 약한 상태다.

오래전에 한국에도 소개되었던 북미 수와미족의 추장 시애틀이 문명세계에 보낸 편지처럼, 원주민의 영혼이 있는 영성의 문화관이 이른바 문명화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도 깊고 강하다.

“백인들이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한 가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즉 당신네 신과 우리의 신은 같은 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신들이 우리의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신도 당신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신들이 내려준 땅입니다. 그리고 신의 연민은 백성들에게 동등합니다. 이 대지는 신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대지를 해치는 것은 조물주에 대한 모독입니다. 백인들도 역시 소멸할지 모릅니다. 아마 다른 종족들보다 더 먼저 소멸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잠자리를 계속해서 오염시켜나간다면 당신은 어느 날 밤 당신 자신의 오물 속에서 질식하게 될 것입니다. 들소들이 모두 살육을 당하고 야생마들이 모두 길들여지며 성스러운 숲속이 인간의 냄새로 꽉 찰 때, 그리고 산열매가 무르익는 언덕들이 수다스러운 부인네들에 의해 더럽혀질 때 잔목숲과 독수리는 어디서 찾겠습니까? 그리고 이동(移動)과 사냥이 끝장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삶의 종말이요, 죽음의 시작입니다.”


■ 바다에서 발휘되는 원주민의 ‘기술’

원주민 하이다족(haida) 신화에 따르면, 허무한 세상에서 외롭고 고독한 것은 해변을 방황했던 레이븐(북미 원주민의 신적인 존재)이었다. 그의 발에서는 거품이 일고 작은 소리가 났다.

마침내 그가 조개껍데기를 열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와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다에서 태어난 첫 번째 사람들이었으며, 오늘의 우리는 그 바닷사람들의 후손인 셈이다.

비너스가 조개에서 나왔듯, 북미 원주민의 신화도 조개에서 탄생했다.


유럽 이방인들이 처음 신대륙에 당도하였을 때, 그네들이 어떤 우월한 문명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주민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백인들이 처음 도착한 시절을 자세히 묘사한 유명한 화보와 일지는 원주민이 선물이나 거래를 목적으로 가져왔던 많은 양의 물고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백인이 원주민의 낚시 기술 덕을 보았다. 신대륙에 정착한 백인들이 풍토병에 시달릴 때, 원주민들의 전통요법은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렇지만 백인은 사회진화론의 단선적·유럽중심적 사고에 입각한 거대한 재앙만을 원주민에게 돌려주었을 뿐이며, 대량학살·폭력·강제이주·전염병 등으로 종의 멸종을 꾀했다.


북미 서해안 바닷가에서 살아가던 원주민의 영성체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들은 핼리벗(halibut, 큰 넙치) 잡이용 낚싯바늘 한쪽에 특별한 무늬를 새겨 넣고 주술의 도움으로 고기를 잡았다.

주술은 인간-자연-신이 교감하는 중요한 매개물이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고기잡이에서는 남획이나 폭력적 어업 등은 고려할 수 없다. 고기를 때려잡는 곤봉은 생존에 필수적인 도구지만 모진 것이다. 원주민 장인은 이들 곤봉에도 생물에 대한 경외감을 담은 그림을 각인했다. 물고기 종류, 주변 환경, 만드는 재료, 문화적 습성 등에 따라 다양한 덫이 나왔다. 그 덫들은 바다의 여러 생명체들에 대한 인디언들의 예리한 관찰력을 한층 돋보이게 하였으며, 바다로부터 난 것을 수확하는 그들의 독창성을 반영했다. 영적이며 높은 예술적 경지에 도달한 이 같은 도구들은 이제 박물관에 가야만 찾아볼 수 있다. 그것도 지극히 일부만 소장되어 있고 인간의 역사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에서 <인디언의 바다>(힐러리 스튜어트 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자를 보면 지금은 영영 사라진 이들 북미 원주민들의 바다와 예술 세계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주강현의 바다, 문명의 서사시]‘무소유의 삶’ 깃든 낚시 기술, 유럽 이방인들도 감탄


■ 원주민의 무소유 정신

원주민의 삶에서는 공동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연어가 거슬러 올라오는 강을 가로질러 친 커다란 어살은 마을 전체의 공동 소유였다. 어살을 소유한 하류 마을에는 회귀하는 물고기를 가장 먼저 거두어들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들이 연어를 충분히 잡고 나면, 물고기가 상류로 올라갈 수 있게 어살을 열어 상류 마을의 어살에 다다르게 했다. 바다와 강이 부여하는 산물은 그저 이용 권리가 있을 뿐, 그 어느 집단도 독점적으로 차지할 수는 없는 법. ‘무소유’가 그네들의 삶에서는 일상적으로 관철된 것이다.

그들은 물고기의 정령과 의사소통하며 물고기를 더 잘 잡기 위해 기도했다. 이러한 기도는 흔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대로였으나, 영적인 체험이나 꿈에서 얻은 경우도 있었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타고난 이들은 노래와 기도를 은밀히 이끌었다. 화약과 총탄과 대포, 돈과 십자가를 앞세운 백인들의 도전 앞에 그네들의 노래와 기도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원주민들이 고기를 잡을 때는 잡힐 고기의 고통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들은 낚싯바늘이 곧다면 물고기의 입 안쪽에 붙어 더 많은 고통을 줄 거라며 낚싯바늘을 굽히는 방안을 내는 섬세한 고민을 했다.

또 작은 고기는 별다른 상처 없이 강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주었다. ‘싹쓸이 어법’에 충실한 이른바 근대수산업의 어획총량 절대적 증가, 만인에 의한 무한 소비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이다.



■ 다양성의 힘

원주민의 민속지식은 전통생태지식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전통과학·민속과학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민속이 포괄적·통념적 개념이라면 민속지식은 보다 선명한 범주와 정치적 견해를 갖는다.

그 정치적 견해란 오늘날의 획일적인 문화구조 속에서 문화다양성이라는 분명한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긴장감을 뜻한다. 민속지식은 일반적 의미의 민속이 아니라 이른바 근대과학체계, 근대지식, 과학지식 등과 대척관계를 이루는 정치적 술어이며, 문명인의 지식이 아닌 이른바 야만·원시·낙후·식민 등의 이름으로 내몰렸던 원주민 지식체계에 대한 재인식을 뜻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 정확히 서술했듯이, 에스키모 원주민들은 눈과 얼음을 수십 종류로 구분한다. 안데스산맥의 험한 자연조건에서 8000년을 살아온 농민들은 100가지가 넘는 종류의 감자를 기르고 있다. 북서 태평양의 원주민들도 물고기마다 전해지는 내력담을 알고 있으며 물고기와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민속지식에 입각한 인류의 지적 체계는 속도와 개발의 문화로 대체되었으며, 느림과 야생의 문화는 오로지 효율만을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되었다.

전통지식의 해체 소멸과 이른바 세계문화로의 획일화 현상은 문명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유엔(UN)은 1992년 6월 리우회의에서 생물종의 감소를 방지하고 생물자원의 합리적 이용을 위해 ‘생물다양성협약’을 채택했으며 유네스코에서는 ‘문화다양성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같은 국제적 합의는 곧바로 전통지식과 기술, 관습에 관한 다양성의 위기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물고기 가운데 지역어가 가장 많은 것은 숭어다. 숭어를 가리키는 방언은 적어도 100개가 넘는다. 그러나 현재는 그 대부분이 소멸되었다.

과학자들은 토착 명칭을 무시하고 이른바 ‘학명’에 따른 분류법에만 몰두한다. 토착적 구분법을 무시하는 일은 오늘날에는 매우 일반적이기도 하다. 토속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민속학조차도 통일적 단일화의 오류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의 생태운동, 혹은 생태학은 의외로 생태의 전통과 역사를 간과하고 있으며, 생태학의 인문적 매개는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 틀린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돌이켜보면, 백인들에게 ‘신대륙’은 야만인의 소굴이었으며, 미신과 광신에 사로잡힌 대륙으로 신의 저주와 압박을 타고난 곳, 심지어는 식인종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본디 신대륙은 그 자체로 ‘파라다이스’였다. 또한 그 세계는 백인들이 규정한 ‘틀린 세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였을 뿐이다. 그 다른 세계에는 남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네들의 문명관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절실히 희구하는 미래의 답안일 수도 있다. 그것이 최대치의 모범 답안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원주민들의 삶의 태도에서 너무도 많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많이 읽고 소비하는 소로의 <윌든>이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세계관이 북미 원주민과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서구문명의 멈출 줄 모르는 승리의 행진은 다른 문화와 민족에게는 재앙이 되었으며, 북미 원주민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야만인지를 북미 원주민들은 그들의 일상사를 통해 웅변하고 있다. 북미의 선주민은 강가에서 작살 하나를 던질 때도 연어가 뛰어오르면 기도하듯 연어에게 읊조리는 사람들이었다. 예고도 없이 무조건 물고기를 향해 작살을 내리꽂는 일은 이들에게는 있을 수 없다. 싹쓸이 어법으로 지구상의 물고기를 전멸시켜 나가는 과학기술이 진보적인지, 아니면 북미 원주민이 진보적인지를 묻는 중이다.